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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숭례문 현판

대도 2008. 2. 13. 08:57

 숭례문 현판

 

 

양녕대군은 이방원의 첫째 왕자로 글 잘하고 글씨 잘쓰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부왕인 태종은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하는 눈치를 차리고 미친 체 하는 등 여러 가지 해괴한 행동으로 세자 책봉을 폐립토록 하였다.

 

그러자 효령대군이 세자 책봉을 위해서 부왕한테 잘 보이려고 몸가짐과 말씨 등 행동거지를 각별히 조심하고 왕자다운 품위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이에 양녕대군은 효령대군을 발길로 걷어 차면서 충녕을 모르느냐고 했다. 그리고 효령대군은 양녕대군의 뜻을 알아차리고 절로 들어가서 북만 쳤다. 북을 아무리 쳐도 찢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부드러우면서도 찢어지지 않고 질긴 것을 효령대군의 북가죽이라고 하는 말이 생겼다.

이런 양녕대군이 해괴한 행동으로 폐세자가 되었다. 그리고 세자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흥(詩興)이 일어나면 시를 지었다.

 

 

 


남대문의 숭례문 현판은 양녕대군이 쓴 글씨이다. 임진왜란 때 이 현판이 없어져서 다른 사람이 글씨를 써서 현판으로 만들어 달았다는데 이 현판이 달려 있지 않고 떨어졌다. 다시 달아도 자꾸 떨어져서 한동안 남대문에는 현판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광해군 때 청파의 배다리란 곳에 있는 웅덩이에서 서기(瑞氣)가 올라 비추어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그 웅덩이의 물을 퍼내고 보니 밑바닥에 양녕대군이 친히 쓴 숭례문의 현판이 나왔다. 이 현판을 남대문에 달았더니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남대문의 숭례문(崇禮門)이라고 쓴 현판이 그 현판이라고 한다.

 

 

 일부 훼손된 숭례문 현판이 12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보존과학실에 보관되어 있다

출처 : jainumer
글쓴이 : 재너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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