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 (불교) [舍利]
출처: 브리태니커
산스크리트 Śarῑra의 음사로서 일반적으로 골조(骨組)·신체·구성요소를 의미하는 말.
이것이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유골, 특히 부처나 성자의 유골을 의미하고,
다시 그 의미가 전용되어 현재는 스님들의 시신을 화장하고 난 후 유골에서 추려낸 구슬 모양의 작은 결정체를 가리킨다.
사리를 숭배하는 신앙은 일찍부터 시작되었는데, 인도 불교의 초기부터 성행했던 불탑 숭배도 사리 숭배와 같다.
전기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입멸하자 그 유골을 8등분하여 각지에 탑을 세워 그 속에 안치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불탑의 시초이다.
나중에 아소카 왕은 8개의 탑 중 7개의 탑으로부터 유골을 모두 모아 다시 세분하여 8만 4,000개의 탑을 인도 각지에 건립했다고 한다.
이런 전통에 연유하여 사리를 숭배하고 공양하는 신앙이 사리탑을 건립하는 등의 형태로 아시아의 불교국에서 널리 성행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사리(佛舍利)를 상징하는 다른 것으로 대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의 가르침을 사리에 비유하여 법신사리(法身舍利)라 한다. 종종 경전을 탑에 안치하는 예가 후자의 경우이다.
또 시신 자체를 가리키는 전신사리(全身舍利)와 유골 또는 거기에서 나온 낱알의 결정체를 가리키는 쇄신사리(碎身舍利)로
구분하기도 한다. 흔히 사리의 양과 수행의 정도가 비례한다고 믿는 것은, 사리가 한량없는 육바라밀의 공덕에서 생기며
우리나라에서는 549년(진흥왕 10) 양나라 사신이 불사리를 가져와 왕이 백관에게 흥륜사 앞길에서 봉영하게 했다는 기록이 최초이다.
이후 황룡사·월정사·정암사·통도사·화엄사 등에 사리탑을 세웠다. 751년(경덕왕 10)에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에 사리를 봉안했다.
사리 신앙은 계속 이어져 여러 사찰에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사리 수습은 승려의 장의(葬儀) 습관과 관계가 깊어 다비를 마친 다음
사리를 찾는다. 이같은 풍습은 조선의 서산대사 이래 커다란 특색으로 등장했다. 보통 사찰에 가면 한적한 숲속에 반드시 부도가 있고,
석종형의 부도 속에는 사리를 모신 것들이 빽빽히 서 있다. 석종형의 부도 표면에는 승려의 사적을 기록했다.
즉 모사(某師)가 모년 모월 모일(某年某月某日)에 입적하여 다비한 뒤, 사리 몇 개를 얻어 삼가 이 부도에 넣고 건립했다는 기록이다.
이렇듯 사리는 신앙의 대상으로 그 의의가 있다.
300여년된 '부처님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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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년된 '부처님 사리' 사진은 불상 복장에서 나온 부처님 진심사리 2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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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사리사진
출처 : | 아비라 | 글쓴이 : 서원 원글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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